출발!

9월 25일, 드디어 출발이다. 오후 8시 비행기라 인천 공항에 6시 조금 넘어서 도착하기 위해 5시 15분에 출발하는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집에서 공항까지의 거리와 고속도로 구간의 비율을 고려했을 때 한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깜빡 하고 있었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막히는 날이다.1 버스에서 한참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아직 고속도로에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6시 반이었는데, 지도를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직 공항까지 반도 못 간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 부분이 정체가 거의 끝나가는 부분이라 교통 흐름이 풀리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가 7시쯤이었다. 내리자마자 E 카운터에서부터 아시아나항공이 있는 L 카운터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다행히도 아시아나항공 카운터에는 대기인원이 한명도 없었다. 보안 검색대 대기줄도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덕분에 탑승 시작 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사먹고 검색대로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인천공항과 시드니공항간의 거리는 8,300km, 비행 시간은 10시간 정도로 꽤 먼 편이지만2, 경도상의 이동 거리보단 위도상의 이동 거리가 훨씬 길기 때문에 시차가 거의 없어서 좋았다. 일광 시간 절약제(daylight saving time)를 시행하는 동안에는 시차가 1시간, 그 이외의 기간에는 2시간이다. 사실 이정도면 명절 연휴 기간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겪는 시차(?)보다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사실상 시차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미국 여행기를 쓰고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시차 적응하는 몇가지 팁을 써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호주 여행기에 그런 얘기를 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내식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기내식은 두세가지 다른 종류의 식사를 섞어놓은 느낌이다. 이코노미석의 경우 기내식 메뉴 선택권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승객이 기내식을 매우 불만족스럽게 평가할 위험을 헤징(hedging)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서 메인 요리로 나온 비빔밥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사이드메뉴로 나온 빵에 버터를 발라서 먹거나 수박 샐러드를 먹으면서 허기를 채우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만약 이렇게 비빔밥과는 전혀 조화로워보이지 않는 뜬금없는 사이드메뉴조차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메인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 승객은 기내식을 포기하고 쫄쫄 굶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이 아닐까. 나중에 Quora같은 곳에 이런 의문에 대한 질문을 올려봐도 재밌을 것 같다.

호주에서의 운전 예습

식사를 마치고 호주에서의 운전에 대한 설명글을 읽어보았다. 21세기답게 4만피트 상공에서 시속 900km로 비행하는 중에도 와이파이가 돼서 자유롭게 웹서핑을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아쉽게도 아시아나항공은 기내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출발하기 전에 띄워놨던 웹브라우저 탭을 보고 있었다. 기내에서 지상으로 음성 전화가 되긴 하는데, 요금이 무려 분당 $12.5라고 한다.

호주에서의 운전에 대한 모든 내용을 다 언급할 필요는 없고, 그 중에서 몇가지만 리뷰해보겠다.

Most Australians live on or near the eastern and south-east coasts. Roads within and between the cities and towns in these areas are sealed (paved) and well maintained, as are the main highways that join the state and territory capital cities. There are usually plenty of well marked rest areas on major highways, though these are usually very basic and do not always have toilet facilities.

In more remote areas (known as the “Outback”) motorists may travel for hundreds of kilometres between towns or road houses without opportunities to refuel, get water, refreshments, or use toilets. In these areas, even on major highways, you will have to plan your trip, including fuel and food stops. Off the major inter-city highways, road conditions can be difficult in remote areas. Many roads are unsealed (gravel or sandy) and often poorly maintained.

이 부분을 읽고 여행 계획을 약간 수정하였다. 원래는 해안 도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시드니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륙 도로를 통해서 남쪽으로 내려올 생각도 있었는데, 혼자 여행하는데에다가 위성전화나 발전기 같은 장비가 없기 때문에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난생 처음 가보는 곳에서의 모험은 매우 신나는 일이지만 그것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다.

In case of an accident involving injury or death to any person, the police and appropriate emergency response authorities must be contacted. Phone the Australian emergency number 000.

호주의 응급 전화번호는 000. 그러고보니 미국이나 호주는 경찰과 소방관을 호출하는 번호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번호로 통합했는데, 한국은 왜 112와 119로 나누어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The driver of any vehicle involved in an accident in which a person may have been injured or killed, or where there is serious property damage, is legally required to stop and render assistance. The penalties for leaving an accident scene can be severe (up to 10 years imprisonment), even if you are not at fault.

그리고 역시 선진국일수록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ceeding the speed limit by 10km/h or so will usually result in you being sent a fine notice of around $200 (and demerit points if driving on an Australian licence). Exceeding the speed limit by more than 30km/h can result in a court appearance and possible criminal conviction.

확실히 한국보다는 범법행위에 대한 대가가 혹독하구나.

When you are driving on Australia’s open roads you may see dead animals on the side of the road. The fact is, quickly swerving or braking heavily could cause a much more serious accident. Dusk and sunrise are times to be on the alert through the Australian bush, as well as regions where you will encounter water sources like rivers and reservoirs, or the plains surrounding mountain ranges.

If you come across multiple tyre marks on the road, this could suggest that animals regularly use this part of the road as a crossing, so just be a little more aware, and also, using the high beam head lights at night, will make it harder for an animal to find an appropriate escape route, so practice flicking them off for animals as well as for on coming traffic.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차로 동물을 쳐본적은 없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에게도, 동물에게도, 차에게도 매우 좋지 않은 경험이 될테니 주의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걸 읽다보니 어느새 잘 시간이 되었다.

기내 응급 환자 발생

쿨쿨 자고 있는데 내 앞자리에 부부로 보이는 승객 두 명과 승무원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승무원이 어디론가 가더니 잠시 후에 기내 방송이 나왔다. 기내에 응급 환자가 발생했으니 승객 중에 의사가 있으면 승무원에게 얘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잠시 후에 의사 두 명이 와서 문진을 하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행히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내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했는데 외부 의료 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가장 가까운 공항에 비상 착륙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인해 발생한 비용은 항공사가 전부 부담하게 되는건지 궁금해졌다. 예를 들어서, 이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착륙을 해야 한다면 착륙시 최대 무게를 맞추기 위해 상당량의 연료를 공중에 버려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목적지까지 비행을 재개하기 위해서 연료를 재구매 해야한다. 또한, 어떤 사정으로 인해 곧바로 이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승객들을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 재워야 한다면 숙박비와 교통비만 해도 꽤 큰 금액이 될 것이다. (혹시 이런것에 대비하여 항공사가 이용할 수 있는 보험 상품이 있을까?) 그리고 비상 착륙으로 인해 지연된 일정 때문에 누군가가 일생일대의 취직 면접 일정을 놓치거나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자연재해로 인한 연착과 비슷하게 아무데서도 보상받을 수 없을 것이라 예상된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봐 사족을 하나 달자면,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비상 착륙 없이 목적지까지의 비행을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건 절대로 아니다. 당연히 환자를 살리는게 최우선이다.

다시 한숨 자고 일어나서 아침식사로 챙겨주는 기내식을 먹고 오전 7시 반 쯤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시드니에 도착

시드니 공항에서의 첫 인상은 미국 대도시의 공항과 비슷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범했다. 인천공항처럼 새집 증후군(?)이 채 가시지 않은 새 공항도 아니었고, 라스베가스 공항처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번쩍번쩍한 슬롯머신들이 나를 반겨주는 특이한 공항도 아니었다.

기내식을 모두 챙겨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파서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맥도날드에 가서 밥을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인터넷에 연결하려고 했는데, 와이파이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공항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와이파이를 이용하려고 하면 일단 매우 느리다. DHCP 서버로부터 IP 주소를 할당받은 후 웹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용자 등록(아마도 MAC 주소 등록)을 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을 여러번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다행히 맥도날드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건 30분 시간 제한이 있었다.

짐을 가볍게 싼 덕분에 위탁 수화물로 보내지 않고 모두 기내 수화물로 가지고 올 수가 있었다. 수화물 찾는 곳에서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쾌적한 여행을 위해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마련할 것들이 몇가지 있었다.

선불 심카드

시드니 공항에 내리면 호주의 주요 통신회사인 OptusVodafone의 부스를 볼 수 있다. Telstra는 없었다. 두 회사의 선불 심카드 가격 조건을 비교해보니 Vodafone 쪽이 더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할인 행사를 진행중이라 AU$35에 굉장한 조건을 제공했다.

  • 원래 가격은 AU$50 (약 43,000원)
  • 데이터 8.5GB
  • 호주 내 통화 및 문자 무제한
  • 한국을 포함한 12개의 국가로의 통화 1,000분
  • 그 이외의 국가로의 통화 50분
  • 유효 기간은 28일

SKT보다 훨씬 좋은데…?

한국에서는 약정 없이 band 데이터 2.2GB 요금제를 쓰고 있는데, 부가세를 포함한 월 정액이 46,200원이고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공한다.

  • 데이터 2.2GB
  • 한국 내 통화 및 문자 무제한
  • 영상통화, 부가음성통화 50분
  • 사용량 제한(quota)은 매달 첫날 초기화

가족 할인을 받아서 30% 할인된 가격에 사용하고는 있지만 할인된 가격을 고려해도 Vodafone쪽이 훨씬 더 넉넉한 혜택을 제공한다.

직원분이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주셨지만, 처음 접하는 호주 영어라 그런지 중간중간 잘 못 알아듣는 부분이 생겼다. 벌써부터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 여행,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렌터카

현지에서의 통신수단을 마련했으니 이제 이동수단을 마련할 차례다. 공항에 있는 Hertz의 부스에 가서 예약한 차를 찾으러 왔다고 얘기했다. 심카드를 구입할때와 마찬가지로 직원이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게 계약 내용을 안내해주고, 추가 보험 조건 같은걸 안내해주셨는데, 중간에 잘 알아듣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몇번 다시 물어보게 되었다. (끄응…)

카운터에 카탈로그가 한 장 펼쳐져있었는데, 이용 가능한 모델 중에 머스탱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돈을 더 내고 머스탱으로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보니 무전기로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잠시 후에 답변이 왔는데, 머스탱은 타이어에 문제가 있어서 정비중이라고 했다. 골프도 눈에 띄어서 혹시 골프를 대여하는 것은 가능한지 물어봤더니 골프는 다섯대밖에 없어서 다 나갔다고 답변해주었다. 그래서 그냥 원래 예약한대로 준중형 세단을 대여하기로 했고, 나에게는 빨간색 토요타 코롤라가 주어졌다. (토요타는 갈수록 디자인이 퇴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주차장으로 가서 열쇠를 받아들고 당당하게 문을 열었는데 조수석이었다. 아 맞다, 여기는 통행 방향이 반대였지. 다시 반대쪽으로 가서 운전석에 앉으니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제외한 모든것이 반대였다. 방향지시등 스위치가 오른쪽, 와이퍼 스위치가 왼쪽이다. 물론 변속기 레버도 왼쪽에 달려있다.

차량을 대여할 때에는 출발하기 전 자동차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게 좋다. 자동차에 흠집이나 파손된 부분이 있다면 계약서에 명시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명시되어있지 않다면 직원을 불러서 이야기를 하는게 좋다. 일단 렌터카 회사의 주차장을 벗어나면 자동차의 파손이나 결함이 내 과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훨씬 까다로워진다. 파손된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추후에 분쟁이 생겼을 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반면, 몇 cm 이내의 짧은 긁힘, 고속 주행중 작은 돌이나 모래 알갱이가 튀어서 생긴 상처(paint chips), 문콕 상처, 범퍼 밑부분 긁힘 등은 일상적인 사용에 의한 마모(normal wear and tear)로 간주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기계적 결함이 있는지 확인해보는것도 좋은데, 많은 경우에 Hertz와 같이 세계적인 렌터카 회사의 차량은 출고된지 2-3년 이내의 새차이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소모품을 교환해주기 때문에3 중대한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지는 않다. 다년간 (미국의) Hertz를 비롯하여 여러 회사의 렌터카를 빌려서 수만킬로미터 이상을 주행해봤지만, 타이어를 제외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2013년쯤에 대여했던 차량의 타이어 중 하나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서 공기압이 서서히 낮아지는 문제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차를 받아올 때에는 멀쩡했지만, 하루가 지나니 한쪽 타이어가 눈에 띌 정도로 주저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다가, 렌터카 정비사들이 타이어 공기압을 잘 맞춰서 내보내기도 하고, 요즘 출고되는 차량들은 대부분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TPMS)이 장착되어있기 때문에 압력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타이어의 노면 접촉면에 편마모가 있는지, 측면 벽(sidewall)에 눈에 띌만한 상처가 있는지 정도만 확인해봐도 충분할듯 하다.

iPhone 7

이동수단까지 확보했으니 이제 캘리포니아의 과일 회사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갈 차례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애플 웹사이트에서 아이폰 7 블랙을 장바구니에 담은 다음 시드니에 있는 모든 애플 스토어의 재고 상태를 알아봤지만 역시나 모두 품절이었다. 특히 이번에 새로 나온 젯블랙(Jet Black) 색상은 3-5주나 기다려야 받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구경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공항 근처의 애플 스토어를 무작정 찾아갔다. 조용히 아이폰이랑 맥북이나 구경하고 가려고 했었는데, 직원이 친절하게 인사를 해주어서 “혹시 아이폰 7 재고 있나요?” 라고 물어보았다. 내가 원하는 색상과 저장 용량을 묻더니 “잠시만요” 하고 손에 들고 있는 단말기에서 뭔가를 찾아보고는 “네! 마침 딱 한개 남은게 있네요” 라고 미소 띈 얼굴로 대답해주었다.

더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신용카드를 꺼내 구매했다. 결제를 도와주는 직원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한 Simple+ 카드의 디자인을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직원의 꼬임에 넘어가서 케이스도 같이 구매했다. 일단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14일 내에만 가져오면 교환 또는 환불 해주겠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까지는 1,500원짜리 케이스를 쓰다가 4만원이 넘는 정품 케이스를 써보니 확실히 좋긴 좋더라. 가격에 비례해서 29배 좋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몇배 이상의 만족감을 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실 아이폰이든 안드로이드 폰이든 요즘 나오는 폰은 기본적으로 매우 잘 만들었기 때문에 신제품을 구입한다고 해서 처음 아이폰을 만져봤을 때의 감동을 느끼기는 어렵다. 분명히 거의 모든 면에서 작년 모델보다 좋아졌지만 퀀텀 점프 수준은 아니다. 빨라진 프로세서, 넉넉한 저장 공간, 햅틱 피드백, 방수 기능, 향상된 카메라 등 모두 마음에 들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나의 아홉번째 폰인 아이폰 6S를 제외하고는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는 폰을 단 한번도 써본적이 없다. 200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구입했던 폰은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미국에 거주했기 때문에 셔터음이 나는 폰을 볼 기회가 없었다. 아이폰 6S는 작년에 일본으로 여행갔던 친구한테 부탁해서 대리 구매를 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카메라 셔터음을 강제하는 국가는 한국이 전세계에서 유일하다고 알고 있었다. 일본에서 구입하면 괜찮을거라 생각했었지만, 하필 셔터음을 강제하는 국가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뿐이었다. (TODO: 문장 다듬기)

처음에는 “그래, 사람들이 얼마나 몰카를 찍어댔으면 이렇게까지 했겠어” 라는 생각이었지만, 지내다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컨퍼런스 발표장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옆사람에게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스피커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야 한다. 사진 뿐만이 아니라 스크린샷을 찍을 때에도 소리가 나게 만들어놓는 바람에 지하철에서 웹서핑을 하다가 재밌는 것이 있어서 스크린샷을 찍을 때 혹시나 카메라 렌즈가 앞에 서있는 사람의 신체를 향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한번은 지하철 역에서 걸어가다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는데 뭘 잘못 눌렀는지 갑자기 카메라가 켜지더니 의도하지 않게 사진이 찍혔다. 다행히 주변이 시끄러워서 찰칵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사진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게 나와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만약 그때 우연히 내 앞에 걸어가던 여성분의 허벅지와 엉덩이가 찍혔다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발견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하면 섬뜩하다.

물론 몰카가 한국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대중교통 뿐만이 아니라 워터파크 탈의실이나 화장실 같은 곳에서 찍은 몰카가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정책을 만드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셔터음을 강제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충동이 들 수도 있다는 점도 이해한다. 단기간에 사법 체계를 바꾸거나, 경찰력을 증원해서 지하철에 배치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으니 단기적 미봉책으로서 셔터음을 강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미봉책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고, 수요가 있는 한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만든다. 심지어 스마트폰에 카메라 모듈을 탑재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효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몰카를 찍을 방법을 어떻게 해서든 마련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사회 체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부정행위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같은 솜방망이 처벌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4 5 6

아무튼 다시 소리가 나지 않는 폰으로 돌아와서 매우 만족스럽다. 사진을 찍을때마다 우렁찬 셔터음이 아는 나의 아이폰 6S에게 편지를 쓴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생필품

아이폰때문에 생각의 가지가 좀 멀리까지 뻗어 나갔었는데, 다시 여행 얘기로 돌아올 때이다. 사실, 별 생각 없이 애플 스토어 하나만 보고 온 쇼핑몰인데 안내 표지판을 보니 식료품점을 비롯해서 매우 다양한 상점들이 있었다. Coles라는 이름의 식료품점이 있어서 안쪽으로 들어가봤다. 넓은 공간에 다양한 농산물과 여러가지 포장식품들이 즐비했다. 내가 관심 있게 보는 품목들의 가격도 (한국과 비교하여) 대체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미국의 마트에서 느껴볼 수 있는 풍요로움을 여기서 다시 느껴보는구나.

Coles

이곳에서 생수, 키친타월, 물티슈 등을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했다. 여기서 영어 팁 한가지. 미국 사람들은 식료품점을 grocery라고 하지만, 호주 사람들은 supermarket이라고 한다.

스마트폰 마운트

네비게이션 장비를 따로 빌리지 않고 구글맵을 이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손에 폰을 들고 운전하는건 위험하기도 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법적으로 금지된 사항이기도 해서 스마트폰 마운트를 하나 구입했다. 다음번에 차를 빌릴 때에는 세상이 조금 더 발전되어 있어서 코롤라 같은 보급형 자동차에도 속도와 엔진 회전수와 같은 전반적인 상태를 표시해주고 길 안내를 해줄 수 있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기본으로 장착되어있었으면 좋겠다.

점심식사

브로드웨이 몰 안을 한참 돌아다니다보니 맹렬한 허기가 찾아왔다. 기내식을 다 챙겨먹고 맥도날드에서 푸짐한 아침식사를 했는데도 말이다. 가끔은 뱃속에 기생충이 들어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점심식사는 몰 안에 있는 Grill’d Healthy Burger라는 곳에서 하게 되었다. 맛집 검색을 해서 찾아간건 아니고 그냥 마음 내키는대로 걷다가 발견한 곳이었다.

식품의 열량을 표시하는 단위가 kcal (킬로칼로리)가 아니라 kJ (킬로줄)이라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단위를 보지 않고 숫자만 보았을 때에는 숫자가 매우 커서 당황스러울수도 있지만, 1,000kJ이 약 239kcal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을 듯 하다.

Drive to Port Macquarie

원래 계획은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브리즈번까지 운전해서 가는 것이었지만, 밤샘 비행 후 피곤하기도 하고 점심을 먹고 출발해서 브리즈번까지 가면 숙소 체크인 시간이 너무 늦어질것 같아서 시드니에서 약 4시간 거리에 있는 포트 맥쿼리(Port Macquarie)라는 도시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 포트 맥쿼리에 친구가 있는것도 아니고, 사전 조사를 해본것도 아니고 순전히 시드니에서 적당한 거리에 있고, 괜찮은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을 수 있어서 즉흥적으로 정한 목적지였다.

10년 가까이 왼쪽 운전석에서 운전하다가 갑자기 오른쪽 운전석에서 운전 하려니까 차를 차선 중앙에 위치시키는 일이 꽤나 까다로웠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초보운전 시절로 돌아간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른쪽 운전석에 조금 적응할만하니까 이번엔 비가 오기 시작했다. 사실, 아까 브로드웨이 몰에서 나왔을때부터 조금씩 비가 오고 있었긴 했지만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졌다. 빗물이 자동차 앞 유리를 때리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TODO: 영상 첨부하기) 그래도 나름 금방 적응했다. 역시 목숨이 달린 일이라 그런지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그렇게 4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서 포트 맥쿼리에 도착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집은 A1 고속도로에서 벗어나서 12km 정도 해안가 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아주 조용하고 깜깜한 주택가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구글 지도에서 친절하게 스트릿 뷰를 보여주긴 했지만, 너무 깜깜해서 그걸로는 어느 집인지 식별하기 어려웠다. 도로 연석에 표시된 건물 번호를 보고 겨우 찾아갈 수 있었다.

차를 세우고 현관문 벨을 누르니 ‘아만다’라는 이름의 친절한 중년 아주머니께서 나를 맞아주셨다. 저녁은 먹었는지, 근처에 괜찮은 레스토랑이 뭐가 있는지 얘기하다가 나한테 질문을 하셨다.

A: 호주에 온지는 얼마나 됐어?
B: 음… 12시간이 채 되지 않았네요. 아침 7시 40분에 시드니 공항에 착륙해서 시드니에서 조금 놀다가 곧장 여기로 왔지요.
A: 오 가엾어라! (Oh, you poor thing) 내가 오믈렛이라도 만들어줄까? 그러면 다시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B: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Actually, that will be much appreciated)

우와 이렇게 친절한 호스트라니! 첫 시작이 좋다.

  1. 물론 평일 출퇴근 시간이 토요일 오후 다섯시쯤보다는 더 막힐 수도 있다. 하지만 평일에는 출퇴근 시간만 피하면 그럭저럭 다닐만한 경우도 많지만, 토요일엔 시간대에 관계 없이 항상 길이 막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2. Distance between ICN and SYD 

  3. Under the Hood: Should I Buy a Rental Car? 

  4. 검찰 “다리찍은 몰카범 징역 가혹” 이색 항소… 법원, 벌금으로 

  5. 제주 몰카 동영상 촬영 유포자 징역 2년 선고 

  6. 여성 승객 104명 몰카 촬영한 택시기사 징역 1년